살다보면 별일도 다 있다. 남편의 귀농얘기가 그 경우이다.

어느날 "귀농하고 싶은데…."

물론 난 흘려넘겼고 조금의 동요도 없었다.

그러나 '귀농'이라는 단어를 어디 말 붙일 수 있는 곳이라면 다 붙이며 내 머리에 박으려 들었다.



하루는 마주 앉아 물었다. 어쩌다 그리 되었냐고.

'삶의 방식'을 바꾸고 싶단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일축했다.

춘천에 늙으면 텃밭 일구며 살기 위해 사놓은 땅에 주말마다 농사를 지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귀농교육을 받고 싶다고 해서 그때 내가 그건 허락했었다.

어차피 연로해지면 선우 앞에서 알짱거리며 살 필요없이 우리끼리 등긁어 주며 공기좋은 곳에서 채마밭이나 일구며 살 계획으로 춘천 땅을 산 것이니 그것도 괜찮겠다 싶어서... 그것이 화근이 된 것은 아닌듯 보였다.

그런데 회사에 멀쩡히 잘 다니던 남편이, 이렇게 새파란 사람이 간다는 거였다.

자다가 봉창두드리는 소리하지 말라며 흘려 넘겼다. 두 번째로 귀농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았을 땐, 괜히 평지풍파 일으키지 말고 그 말을 주워담는 것이 좋겠다고 으름장까지 놓았다.

어느 날 편지가 왔다. 그이가 보낸.

거기에는 귀농이유가 알사탕 매달려 있듯 줄줄이 엮여 있었다.

첫째, 남을 밟고 내가 올라가야 하는 사회, 이기적인 생각과 잔머리로 하루를 보내야 하는 사회가 싫었단다. 게다가 그 생활을 정년퇴직 때까지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너무너무 허무하더란다. 그래서 나머지 삶은 '삶의 방식'을 바꾸어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단다. 지금껏 살면서 이렇게 멋있는 말을 그에게서 들은 적이 없는데 사태가 심각하긴 심각한 모양이었다.

말은 좋지... 그러나 현실이 그것을 바쳐주지 못해서 많은 이들이 결단을 못내리는 것이지 않은가.

둘째, 남자로 태어나서 하고 싶은 일을 하다 죽고 싶단다. 그저 시계 추처럼 삭막한 공기를 끌어안고 하루를 시작해서, 찌든 도시의 찌꺼기를 집까지 지고 와야 하는 도시생활에 염증이 난단다. 더 높은 직위, 더 큰 아파트, 더 좋은 차 가지면 가질수록 빈 가슴에 바람만 이는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셋째, 아이들을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위에서 계획된 스케줄대로 이 학원, 저 학원 기웃거리는 아이로 키우고 싶지 않다고.

자연에서 흙을 밟고, 흙을 만지며 자연이 가르치는 대로, 땅과 함께 호흡하며 자라게 하고 싶단다.

그래서 귀농은 반대를 해도 하긴 하는데 되도록이면 동의를 얻고 싶단다.

거의 협박에 가깝다고나 할까.

다시 두 번째로 마주 앉았다.

"당신만 일이 있는게 아니다. 나도 내 일이 있고, 내 일 또한 소중하다. 자신이 하는 싶은 일 하고 싶다고 하면 내 일 역시 놓고 싶지 않은 일이다"라고 .

시간이 흐를수록 언성만 높아질 뿐....

이쯤되면 두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시어머님 말씀대로 이혼하던지(시어머님은 "그 놈 미쳤으니 니 이혼해라"하셨다),
따라가던지.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던 난 남들이 가지 않는 길, 남들이 어리석다고 말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한 고민으로 여러 날을 새웠다.

남편은 지금까지 일에 관한한 가장으로서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고, 귀농해도 실망시키지 않을거란 믿음이 있었다.

또 내가 존경하는 성프란치스코 성인이나 법정스님이 강조하시는 무소유적인 삶에 대해선 늘 가슴을 열고 있던 터라 그리가 말하는 새로운 삻의 방식에 대한 끌림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 문제는 그이 생각과 일치했다.

이 가방, 저 가방 쥐어주며 학원 늦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루에도 몇 번씩 해야 하는 자신이 늘 불만이었다.

또한 바쁜 아빠의 맨 얼굴 보는데 2박 3일 걸리는(거의 매일 회식이다 뭐다 하여 술취해 들어오면 아이들은 자고...) 생활, 그러다 보니 아이들과 아빠의 관계는 서먹서먹하고 이웃집 아저씨처럼의 관계(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아이들과도 놀아줘본 사람이나 놀아 주지... 놀아준다고 울리는 일이 태반이니...)

삶에 있어서 '양 손의 떡을 줄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도시에서 돈도 잘 벌고, 풍족하게 살면서 자연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부모와 많은 대화를 하고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지.... 그렇다면 난 어느 쪽으 떡을 쥘 것인가..

자연에서 아이를 키우고, 삶의 방식을 바꿔 보자는 떡을 쥐기로 결정했다. 

그 와중에 친정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얼마 후 그이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삶은 이리 돌아가는구나' '잘났다고 해봤자 한 치 앞도 내다 보지 못하는 하루살이와 같은 존재구나'하는 허무한 생각에 근본부터 생각하게 되었다.

돈이 뭐가 중요하고, 명예가 뭐가 중요한가, 내 일이, 전공이 뭐가 중요한가.

결국 1999년 12월 23일 귀농을 허락했다.

내 허락이 있고 사표를 냈으나 수리되지 않았다.

귀농 결정하고 나니 바쁜 사람은 나!

부동산사무실에 아파트 내놓고, 춘천 땅 내놓고, 귀농정보 알기 위해 이 책, 저 책 읽고, 아이들의 문화충격을 줄여주기 위해 이번에는 내가 아이들을 세뇌교육시켜야 했다.

이제 집도 팔리고, 땅도 팔리고, 귀농지도 구입했는데 그때까지도 사표는 수리되지 않았다.

결국 아파트를 비워줘야 하는 날이 되어 나와 아이들과 이삿짐만 먼저 산골로 옮겨 앉았고, '나를 따르라'로 침튀겨가며 외치던 남편은 정작 한참 후에 현대자동차 소장의 자리를 참새 깃털 털듯 툭툭 털고 나중에 산골에 합류했다.

남편과 아이들은 순식간에 이런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 글은 귀농 6년차에 하늘마음농장지기가 낸 '살골살이, 행복한 비움' 실린 글입니다.

풀벌레 소리가 요란한 것으로 보아 가을이 저만치서 들이닥칠 준비를 하고 있는가 봅니다. 이렇게 전주곡을 들려주니 말입니다.

귀농하고 당신에게 이런 글을 써보긴 처음이네요.

귀농 전 귀농 이유를 깨알같이 쓴 당신의 편지를 받았을 때처럼 이 글을 쓰는 지금 가슴이 박하사탕을 먹은 것처럼 화해집니다.

귀농 6년을 돌아보면 왜 당신이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라는 노래를 왜 좋아하는지 알 것같습니다.

'자고나면 위대해지고 자고나면 초라해지는 나는 지금 지구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쉬고 있다. 야망에 찬 도시의 그 불빛 어디에도 나는 없다.'

그렇지요.

귀농 얘기를 꺼냈을 때 왜 잘 나가다가 이런 말을 하느냐고 어이없어 했습니다.

당신의 귀농 이유가 여기에 들어있네요.

노래는 이어지지요.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 둬야지. 한 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야지. 묻지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몇 달 전 노래방에서 이 부분을 목청껏 부르는 당신을 보았습니다. 이제는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왜 그런 힘든 삶을 선택했는지 , 남이 가지 않는 길을 왜 유독 당신만 가려고 하는지….

'사랑이 외로운 건 운명을 걸기때문이지. 모든 것을 거니까 외로운 거야. 사랑도 이상도 모두를 요구하는 것. 모두를 건다는 건 외로운 거야'

지금은 당신이 어떤 것에 마음의 한 쪽을 비워두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라일락냄새가 나는 것임을, 사람냄새가 나는 것임을 이젠 압니다. 거기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합니다.

귀농 6년차.

돌아보면 힘든 파도도 많이 만났지요.

그때마다 우린 더없는 위로자요, 친구요, 든든한 후원자였습니다. 이젠 해를 거듭할수록 면역력도 생겨 거센 파도도 지혜롭게 넘기게 되었지요.

지금에서야 말인데 당신에게 고마운 점이 있습니다. 산중살이를 하면서 삶의 가치관이 변했다는 것입니다.

귀농 전에는 욕심을 키우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가지면 가질수록 왜그리 옆구리가 허전한지…욕심은 그런 것이더라구요. 지금은 꿈을 키우며 삽니다. 이룰 수 있는 작디 작은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 기쁘게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지금 가진 것이 너무 많음을 알았다는 점입니다. 15평도 안되는 오두막에서 살면서 이런 말을 하면 다들 웃겠지요.

그러나 가족들이 건강하다는 것이, 아이들에게서 희망을 본다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은 아이들과 당신이 친구가 되었다는 것이 이리도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삶에 있어 감사함을 느끼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래서입니다.

요즘 우리의 화두는 '눈을 굴리며 살자'지요. 내 앞만 보지 말고 눈을 옆으로 굴려 당신이 좋아하는 노래가사처럼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겠지요.

한 시대의 소풍길을 가는 사람끼리 무엇을 나누어야 하는지, 우리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말입니다.

얼마 전에 읽은 오쇼라즈니쉬의 책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겁쟁이와 용기있는 자의 유일한 차이점은 겁쟁이는 자신의 두려움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것을 따르게 되고, 용기있는 자는 두려움을 제치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점이다.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는 것이 용기이다'

정말이지 당신의 용기에 힘찬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이 붑니다. 올 가을도 뿌린 만큼 거두든 그렇지 못하든 감사할 자신이 있습니다.

더 찬바람이 나기 전에 올 겨울에 쓸 장작을 서둘러 준비해야겠지요.

--2005년 9월 귀농을 반대했던 당신의 아내가--

<산골살이, 행복한 비움> 중에서...

* 이 글은 초보농사꾼이 쓴 글입니다*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밭일을 하다보면 옷인지 땀복인지 구분이 안된다. 모자 밑으로 흐르는 땀은 왜 그리 눈을 찾아 들어가는지.

그 놈을 막으려고 팔뚝으로 훔치면 땀냄새보다 쉰 냄새에 가까운 것이 코를 자극한다. 그 때가 '내가 정말 농사꾼이구나'하는 순간이다.

'땀흘려 일한다'는 의미를 직장생활 할 때는 실감하지 못했다. 정말 땀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잘 굴려 일하는 것이지...

그러나 땅 가까이 살면서 그 의미를 알았다는 것은 여간 다행이 아니다. 하마터면 그 의미도 모르고 살아갈뻔했으니 말이다. '삶과 땀' 그것은 서로 섞여 구분되어질 수도 없는 그 무엇이 아닌지.

귀농 연수가 거듭될수록 그 땀의 의미는 더욱 커져만 가니 그것이야 말로 내가 새로운 삶을 선택하길 잘했다고 스스로에게 칭찬하는 대목이다.

지금 귀농한지 6년차가 되었다. 어딘가에서 읽었던 내용이 생각난다.

'1년차는 낭만이고, 2년차는 절망, 3년차는 포기, 4년차부터는 희망'이라고...

정말 그런 것같다. 산골에 둥지를 틀자마자는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 자유로움이란...

그러나 산골도 사람사는 곳은 마찬가지. 이런저런 일로 상처받는 일도 잦았다.

사람이 사람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드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런 사람도 있지만, 연고없는 곳에 뿌리내리려는 산골가족에게 한겨울 화롯불처럼 닥아온 사람이 훨씬 더 많았으니 그런 비참함 또한 내 길은 힘차게 걸어가는데 거름이 되었음은 말할 나위 없다.

그런가 하면 산불이 나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던 일, 한 해 농사를 다 말아먹었던 일 등은 나의 귀농생활에 빼놓을 수 없는 고통의 매듭이었다. 그러다 보니 희망은 점점 그 빛을 잃어가는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것은 직업을 바꾼 것이 아니고, 삶의 방식을 바꾸고자 한 것이기에 마음 한 구석에서 꿈틀꿈틀 귀농 초의 용기가 새끼를 치기 시작했다.

고통은 다른 역경을 이겨내게 하는 알약이지 그것이 걸림돌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그 또한 헛된 것이 아니었다.

이제 귀농 6년차. 희망이 보인다. 그리고 꿈을 꾼다.

그 꿈은 귀농 전 모레 위에 짓는 꿈이 아니고, 6년 동안 비, 바람으로 단단히 다져놓은 땅에 세우는 꿈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내겐 있다.

나의 작은 꿈 중 하나를 공개하면 중학교 1학년인 아들 놈 흙방 하나 지어주는 것이다.

아들 놈이 작디 작은 흙방에 누워 나처럼 아무리 어려운 역경에도 무너지지 않을 꿈을 키울 그런 흙방 말이다. 난 칼바람을 등에 지고 그 놈을 위해 군불을 때줄 것이다.

이 꿈은 내가 귀농 전 도시에서 집을 넓혀갈 때보다 더 신중하고 가슴 부푼 일이다. 또 이웃과 무엇을 나누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하고, 지난 태풍으로 망가진 쪽문 하나 만들어야 하고, 선우, 주현이가 개학하기 전에 소광리에서 신나게 함께 수영을 해야 하는 일...

이것이 내 코 앞에 닥친 '새끼 꿈들'이다.

산골을 찾는 많은 이들이 묻는다. 이제 큰 꿈(귀농)을 이룬 것 아니냐고...

그러나 나의 삶에 대한 물음에는 마침표가 없다.

새로운 삶을 위해, 또 다른 꿈을 위해 난 끊임없이 용기를 키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야콘밭에 풀이 우거졌으니 그 놈들을 제거하러 서둘러 야콘밭으로 가야 겠다.

2005년 9월 초보농사꾼 박찬득

<산골살이, 행복한 비움> 중에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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