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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다시 말을 거네> - 시인 류근
산골청년
[2013-09-19 11: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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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쓴 산문집' 이라는 어머니의 소개에 난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안 그래도 범인들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신세계의 소유자들인 시인이 쓴 산문이라니. 지금도 난 '산문집'이라고 하면, 비 몇 방울 떨어지는 찰나에 일기 마련인 센치함을 억지로 극대화시켜 끼적거려놓은 잡문들을 떠올리곤 한다.

양질의 산문집을 가려 읽지 못한 내 탓이 더 클 것이나, 여튼 주제가 '독자 울리기'라도 되는 양 대책 없이 최루탄 터뜨리기 바쁜 이류 산문들의 첫인상이 너무 좋지 않았다.

해도, 어머니의 강권에는 이유가 있으리라 자위하며 몇 장 넘겨보는데, 기상천외한 문장 하나가 내 대수롭지 않은 눈길을 붙들어 끌었다.

'조낸 시바스럽다.'

응? 처음에는 내 눈을 의심했다. 조낸? 시바? 이게 진정 글로 밥 벌어먹는 인간의 펜끝에서 그려져도 되는 문자인가... 책에 둘러진 띠지에서 저자는 자신이 '트로트 통속 연애 시인'임을 자랑스레 자처하고 있었다.
1초, 2초, 3호.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최소한 '나 시인이오.'하고 폼 잡을 사람 같진 않아 난 복귀길의 쇼핑백에 책을 담았다.

부대 복귀 후 이 책을 읽는 일주일동안 얼마나 자주 웃었다 울었는지 아주 진이 쏙 빠져 버렸다.
옛 성현들 말씀이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하셨겠다.
일단 내 필사노트에 빼곡히 적힌 본문을 일단 인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왠지 이 책마저도 주제의식이 어쩌니 , 표현법과 문체가 어쩌니 썰(?)을 풀어버리면, 이 책을 읽은 나머지 모두는 나를 비웃을 것이다.

'내가 사는 집 대문 옆에는 네덜란드 대사관 소속의 개 한마리가 사는데, 대문위에 올라가서 짓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이 개쉐이, 그런데 시인을 몰라보고 내가 지나갈때마다 위에서든 아래에서든 조낸 짖어대는 바람에 시인의 존엄을 훼손하는 것이다. 나는 너무나 화가 난 나머지 이놈의 개쉐이야, 니가 그러니까 개쉐이지, 어찌 시인을 몰라보고 허구헌날을 짖어댈 수 있단 말이냐. 라고 따지었다. 개쉐이가, 나를 볼때마다 짖었으므로 나 또한 그 개쉐이를 볼때마다 따지었다,'
                                                                                                                                                      -16p

'다음에 우리 만날 땐 광화문 어디쯤 빵집에서나 만나리. 소보로 빵과 단팥빵과 슈크림빵을 산처럼 쌓아놓고 당신은 오렌지 주스를 마시고 나는 뜨거운 우유를 마시리. 당신은 국제극장에선 본 <사막의 라이온>을 이야기하고, 나는 mbc청룡의 부실한 수비에 대해서 이야기하리...(중략).... 아아, 5월이 가기 전에, 이승의 5월이 다 가기 전에 우리 다시 만나리. 광화문 어디쯤 빵집에서. "햇빛처럼, 꽃보라처럼 또는 기도처럼" 만나리. 조낸 조낸 그리운 당신.. 아.. 시바..'
                 -138p  


네덜란드 대사관 개쉐이가 감히 시인을 못 알아보고 짖어대면 ‘그러니까 니가 개쉬이지’라고 궁시렁 거리고, 먼 옛날 광화문 빵집에서 마주 앉았던 그녀가 아련한 날엔 ‘조낸 그리운 당신.’이라 쓴다. 지극히 솔직한 글이고, 그래서 스며들어 흔들 수 있는 글이다.
딱 여기까지만 읽고 ‘이거야말로 십대들 잡문집이지 뭐냐.’ 며 반문한 몇몇 분들을 위해 좀 더 인용해 보겠다.

‘며칠 미친 듯 퍼대다가 딱, 술 멈추고 맨정신 돌아오면 낯선 행성에 팽개쳐진 기분이다. 우울하고 참혹하다. 아무데서도 버림 받은 것 같지 않은데 그냥 서럽고 억울하고 막막하다. 이래서 형님들께서 해장술이라는 절묘한 비방을 맹그신 게 아닐까. 그래도 오늘은 아니 마시겠다. 때론 맨정신으로 삶을 견뎌야 하는 날들도 있는 것이다.’
-33p

답 없는 알콜 중독자와 주당의 차이점이 뭘까? 내 개인적인 신념으론 술에 기대야 할때와 맨 정신으로 직면해야할때를 구별해내고 실현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술 사랑이라면 지극하다 못해 지독한 저자 역시 이를 정확히 인지하고 결행하는 힘을 지닌 작가다. 내친 김에 하나 더.

‘누군가를 미친 듯이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앓는 일에도 열정을 발휘하지 못한다. 고통조차 뒤꿈치 들고 숨죽이며 지나가는 비겁! 이러한 비겁이 나를 결국 “어느 날 흐린 주점에 앉아” 있게 할 것이다.'
-99p

이 정도 깊이와 버무려진 서정. <사랑이 다시 말을 거네> 가 센치함과 최루 가스만 자욱한 잡문집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증명되었으리라 믿는다. 광고인 박웅현은 고 박경리 선생의 <토지>를 보약 먹듯 챙겨 읽었다지만, 나는 류근 시인의 이 책을 한첩 한첩  귀하게 받아 읽으며 웃고 울었다. 이로 인해 엄숙함으로 석화 되어 버린 내 머리와 가슴이 조금은 말랑해 졌으리라 기원하며.......... 아! 조낸 시바!
                                                                                            
하늘마음
09.25. 12:38  
아들아,
네가 이렇게 글로 오늘 하루를 감동하게 하는구나.
사실 홈을 열고 미국에 사는 영렬이 이모가 홈이 열려 글을 남겼어.
그러니까 네가 모르는 일인데 외국에서 우리 홈으로는 들어오지 못하도록 스팸때문에 갑자기 막은 모양이야.

영렬이 이모도 안열린다 하고, 프랑스의 아줌마도 안열린다 하고, 영국분도... 그래서 이상하다 하여 사이트 만들어주신 아저씨께 전화했더니 외국 스팸때문에 언제부턴가 막았다고...

그런데 오늘보니 영렬이 이모가 글을 남긴 거야.
반가움보다 더 진하고 거기에 야릇한 기대..오늘은 운수 대통한 날이 될거야 라는 그런 기대까지 얹혀지니 이거 원 행복해서...

그런데 너의 글을 우연히, 정말 우연히 보았어.
사실 너희들이 성인이 된 후 홈에 글을 잘 안남겨서 너희들 책후기 코너는 매이은 안들어가게 되더라구.

그리운 날엔 너희들이 쓴 글을 읽어보러는 자주 갔지만..
그런데 어??
이건 뭐야??

영렬이 이모에게 막 답글을 달고 나와서 네 글을 보았단다.
발견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듯...

추석날 썼구나.
추석날 송편은 먹었나.
뭐 맛난 것이나 얻어 먹었으려나...그 생각만 했었지.

명절에 이래저래 걱정되는 사람들...
그랬었어.

이 책 다 읽었구나.주현이 아빠도 읽으시겠구나.
아니 같이 읽으면 대화의 폭도 넓어지고 좋지.

너의 후기를 보면서 그랬구나, 그랬구나...말을 연속 되뇌었단다.

아들아,
날이 추워.
몸 관리 잘 하고 건강히만 있다가 오거라.

너의 글이 얼굴 한번 본 것처럼 반갑고 아리했단다.....
종종 그런 행복을 주면 좋겠고.ㅎ 군인에게 어려운 부탁했네.

그럼 지금처럼 잘 있거라.

너의 엄마가
산골청년
09.25. 08:31 삭제
엄마, 며칠전에 홈페이지가 광고 폭탄을 맞아 완전 실신 직전인 걸 보고 왜 그렇게 가슴이 미어졌는지 모르겠어.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과 우리 가족 사는 모습을 보러 오시는 여러 손님들의 사랑방인 이 공간이 각종 성인 광고물로 채워졌을때의 분노란... 정말 군인만 아니었어도 광고 번호로 전화해서 무슨 짓을 했을런지.

이 책을 읽으면서는 참 행복했어. 다른 책을 읽고 있으면,(아무래도 내가 그런 류의 책만 골라서 읽는 경향이 있지만) 항상 내 자신이 부끄럽기만하고, 더 채찍질 해야 할 것 같고 그랬거든. 심지어 한가하게 편히 앉아서 책을 읽는 내 자신이 한심할 정도?
근데 이 책은 위로가 됐어. 무슨 되지도 않는 힐링이니 멘토링이니 헛소리만 늘어놓는 류의 '힐링 도서'들 보다 훨씬. 뭘랄까. 세치혀가 아닌 생활로, (니체 표현을 빌리자면) 피로 쓴 글자들이 주는 진짜 토닥거림이랄까?

보고 싶다. 군생활 동안 이 죽일놈의 게으름을 빼면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감정일것 같네.

또 한번 안녕 엄마. 난 무조건 잘지내니까 기도할 시간에 부족한 잠이나 채웠으면 내가 훨씬 맘이 편하겠어. 안 그래도 홈페이지 때문에 새벽까지 모니터 붙잡고 머리칼만 쥐어 뜯었을텐데. 낮잠이라도 더 자고. 책 읽을땐 꼭 밝은 곳에서 보고. 그래도 덜떨어진 아들이 걸리거든 밖에 나가서 은하수 보면서 거북바위 등 한번 쓸어내려 주고. 나 몸에 두드러기 만개하면 얼른 나으라고 하염없이 문질러 주듯이...

안녕! 잘 지내 ^^ 간간히 이제 독서평 올리도록 해볼게. 군생활동안 읽은 책이 100권 훨씬 넘는데 그거 한꺼번에 올리려면 이제 일났다. (꾸준히 좀 올릴걸 ㅠㅜ)
하늘마음
09.25. 11:44  
아들아,

이렇게 글이 올라왔을줄 모르고 네가 쓴 글 또 보려고 들어왔는데 와...이건 또 무슨 선물??
오늘은 야콘잎 채취하는 일을 했어.
어둠이 내리깔릴 때 철수했지.

돌아오면서 아빠가 '방앗간'을 들리셨고, 엄마도 오늘은 같이 있다가 늦게 돌아왔어.
늦은 저녁을 먹고 씻고 컴을 켜자마자 네가 쓴 따끈한 글을 다시 읽으려고 들어오니 이런 복이..ㅎㅎ

까막정신에 잊기 전에 말할께.
너나 책읽을 때 그 전구 켜고 보지말아라.
보내달라고 해서 보냈지만 그 작은 손전등으로 책을 보면 너야말로 눈 버려.

엄마는 많이 나빠졌어.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한번 돋보기 쓰면 몇 시간을 걸치고 있으니 확 가는 것같애.
그러니 눈 조심도 하거라.

네가 이 책을 잘 읽었다니 좋구나.
주현이도 그렇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꼭 함께 읽고 얘기하자꾸나.
아빠도 읽으시도록 할게.

지금도 나갔다 왔어.
별들이 기계충을 앓은 것처럼 뜨문뜨문...

지금은 꿈나라로 갔겠구나.
지금도 각잡고 자는지...

그래, 잘 자거라.

너의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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