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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 <밥벌이의 지겨움>
산골청년
[2014-01-17 15:2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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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또래 지인들에게 김훈 작가의 글을 권해 읽게 하면 돌아오는 감상평은 많은 경우 다음과 같다.

‘너무 차갑고 무뚝뚝해서 읽다가 진이 다 빠진다.’
‘가부장주의적 발언이 많은듯하다.’
‘이상하게 마음 한 구석이 쓸쓸해져서 기분이 나빠졌다.’ 등등...

김훈 작가를 존경해마지 않는 팬 중의 한 사람으로서 단언컨대 위의 감상평은 모두 정확하고 또한 정직한 감상들이다. 나 역시 김훈 작가의 책을 덮고 단 한 번도 개운하다거나 신바람이 났던 적은 없었으니까. 매번 그저 막막하고 아득할 뿐이었다. 미간을 찡그리며 위와 같은 독서평을 내게 일러준 이들은 최소한 글을 진지하게 읽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다만 아메리카노의 쌉싸름한 미감을 부러 찾는 이가 몇 없듯, 그들도 다만 개인적 취향에 반(反)했을 뿐이리라.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저 좋았다는 식의 예의상 감상평 정도는 이제 구별할 줄 알게 되었다.

지금껏 그의 책을 꽤 많이 읽어왔다. 일일이 세보니 10권이 조금 넘더라. 소설, 수기, 여행기... 김훈 작가가 쓴 책이라면 출입가능한 모든 도서관과 헌책방을 누비며 구해 읽었다. 입대 전 기차 여행할 지역을 선정할 때 부산을 선정한 이유는 단 하나, ‘보수동 헌책방에서 김훈 작가의 절판본을 찾기 위해’였을 정도니까. 프리드리히 니체가 살아서 이 광경을 접했더라면 결국 또 다른 우상이 널 노예로 만들었구나! 라며 통탄해 마지않겠지만, 아직은 그의 책을 놓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 책은 군 생활할 때 화장실 변기 위에서 읽었던 몇 권의 책 중 하나이다. 할 줄 아는 것은 없이 어디를 가나 사고투성이였던 중대 막내 시절, 같은 이등병이었던 맞선임(바로 윗선임을 지칭하는 군대용어)뒤만 졸졸 따라다니며 청소 방법부터 일일이 다시 배워야 했던 그때, 의자에 고상히 앉아 책장을 넘긴다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상식을 벗어나는 행위였다.

그럼에도 나는 김훈을 읽고 싶었다. 아니, 읽고 싶었다는 표현보다는 읽어야한다는 강박증 비슷한 것에 하루종일 시달렸다고 보는 것이 좀 더 적확한 표현이겠다. (옛날 군대에 비하면 우스운 수준인 걸 잘 알지만) 아침 기상부터 저녁 취침 시간까지 먹고 입고 말하는 것 전부를 통제당해야 했던 이등병 때 생활은 지금도 말로 형언하기 힘든 정신적 스트레스가 되어 사정없이 나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그때의 나는 선임들 몰래 씹지도 않고 삼키는 초코파이 몇 개보다는 김훈 작가의 글이 내게 더 적절한 처방임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모든 병사들이 취침에 들어간 22시부터 나의 007 작전 독서는 시작되곤 했다. 작전장소는 취침 시간에도 유일하게 불이 켜져 있는 1층 화장실 변기칸. 볼 일을 보러 가능 것인 양 위장해야 하므로 두루마리 휴지 한 뭉치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차가운 변기 위에서 내가 밑줄 긋고 필사한 ‘밥벌이의 지겨움’은 이러했다.

‘밥벌이도 힘들지만 벌어놓은 밥을 넘기기도 그에 못지않게 힘들다. 술이 덜 깬 아침에 골은 깨어지고 속은 뒤집히는데, 다시 거리로 나아가기 위해 김나는 밥을 마주하곡 있으면, 밥의 슬픔은 절정에 이른다.’
-35p

‘예수님이 인간의 밥벌이에 대해 말씀하신 “하늘을 나는 새를 보라. 씨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거늘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먹이시느니라.” 라고 하셨다지만 나는 이 말을 믿지 못한다. 하느님이 새는 맨입에 먹여주실지 몰라도 인간을 맨입에 먹여주시지는 않는다.’
-36p

‘무기는 전쟁의 도구이고 농기구는 평화의 도구이다. 이 모순된 운명의 도구들은 같은 화덕에서 태어나고 쇠의 자식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137p

‘더러운데 하는 것, 하면서 견디는 것, 그게 좋은거다. 죽지 않고 산다는 것은 흥정과 타협의 산물이 아니면 안 된다.’
-264p

‘나는 돈을 사랑하진 않지만 절대 잊을 수 없는 처지였다. 돈을 우습게 보는 사람은 그 사람이 더 우습게 보인다. 돈은 준엄하다. 삶은 포기한 자가 아니면 어떻게 돈 무서운 줄 모르나.’
-255p

‘나는 가부장주의자이다. 아버지에게 그렇게 교육 받았다. 여자는 약하니까 보호하고 보살펴야 한다고. 그게 가부장 된 자의 덕성이다.’
-257p

김훈이란 작가는 대체 글을 어떻게 쓰기에 저작들을 10권 넘게 읽는 내내 기분이 안 좋았다는 것인지 의문이었던 분들은 아마 위의 인용문들로 어느 정도 수긍을 하셨으리라 믿는다. 맞다. 저런 글을 읽고 상쾌할 독자는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 그의 글을 읽으면서 참 많이 아팠다.
하지만 내가 김훈 작가의 글을 놓지 못하고 구역질나는 변기 악취를 맡아가며 이 책을 꾸역꾸역 읽어내려 갔던 이유는, 그의 글은 삶에 대해 정직했다는 확신 때문이다. 내가 읽어온 대한민국 작가들 중 ‘돈은 준엄하다.’라고 쓴 작가는 아직 없었다. 작가 가오(?)가 있지 속물처럼 어떻게 돈을 중요하게 여기는 글을 쓴다는 말인가. 21세기에 ‘나는 가부장주의자다.’라고 쓰는 작가 역시 없었다. 김훈 작가는 아무도 쓰지 못하는 바로 그 문장을 쓰는 작가라고 나는 개인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김훈 작가의 정직성은 당신 자신과 문장을 향해서도 예외 없이 휘둘러진다.

‘사람들이 (나의) 문장에 대해 지적하는 것을 들으면 대개 옳다. 그런데 그런 지적들이 내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 문장은 내면에서 올라오는 필연성이다. 오류를 알지만 고쳐지지 않는다.’
-250p

목소리든 글이든 그림으로든,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을 표현하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오류를 담담히 인정하는 정직성과 그럼에도 자기 내면이 이끄는 표현을 지키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작가는 내게 말하고 있는 듯 했다. 더럽고 치사하고 이가 갈려도 꾹 인내하고 담대하게 살아가라고. 하느님께서 먹여주지 않는다면 네가 직접 너를 먹이라고. 당시 환갑을 바라보고 있었을 노(老) 작가는 그렇게 명령하고 있었다. 냄새 나는 변기 위에서 만사가 그저 서럽기만 하던 이등병은 이 책과 함께 조금씩, 나무가 자라며 소리 없이 나이테를 새기듯, 그렇게 조금씩 성장해 왔다.

2014년 1월 16일. 아무래도 전역 후 처음으로 쓰는 독후감이라 그런지 글이 질서가 없고 술자리 사담을 그대로 옮겨 적은 듯 내용이 빈약하다. 그렇다고 이런 글까지도 ‘내 내면에서 올라오는 필연성’이라 우기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건 그저 내 능력의 부재일뿐이니까.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단연 압권이었던 문장 전체를 인용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변기 위에 쪼그려 앉아 필사를 하는 와중에도 다른 색깔 펜을 꺼내 옮겨 적었을 만큼 감동적인 문장이었다. 참고로 인용문의 앞 내용은 김훈 작가가 바닷가 염전을 찾아 바닷물이 소금이 되는 과정을 관찰하는 내용이다.

‘바람이 잠들고, 햇빛이 무서운 날에 굵은 소금은 낱알이 굵고 입자가 안정되어 있고, 향기로운 알맹이를 으뜸으로 친다. 짠맛 안에 바닷물의 향기와 햇빛의 향기를 모두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증발이 깔끔하지 않아서 불순물이 남아 있을 때 소금은 쓰다. 바람이 불어서 염전 바닥의 물이 흔들이면 소금의 입자는 불안정해 진다. 좋은 소금은 폭염 속에서 고요히 온다. 인간이 가장 고통스러운 날에, 가장 향기로운 소금은 인간에게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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