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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 시인 /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산골청년
[2014-01-26 14: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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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 황지우 시인

그런 문장이 있다.
너무 압도적이어서, 너무 통렬해서 감히 목표로 삼기에도 민망해지는 무시무시한 필력.

글쓰기에 욕심이 있는 나로서는 좋은 문장을 보면 찬찬히 음미하기보단 ‘어떻게 하면 나도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하는 욕심이 앞서기 마련인데 이런 문장을 마주하면 그대로 기가 질려 버리고 만다.

황지우 시인의 대표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가 바로 대표적인 책이다.
일단 책 제목 자체부터 시(詩)이지 않은가.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사람들,
모두 어딘가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황지우 시인 <뼈아픈 후회> 중



이 시를 처음 읽고 말 그대로 헉! 소리를 삼켰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마 시 공모전을 앞두고 견습시 몇 편을 끼적거릴 때였을 거다.

좋은 시를 읽고 자극을 받아보자는 취지에서 찾아 읽은 시였건만 되려 나의 시작(詩作) 의지는 땅에 처박히고 말았다.

가수 지망생들이 초창기의 ‘나는 가수다’를 봤을 때 느꼈을 감정이 이러했을까.
그 공모전을 끝으로 나는 시작(詩作)을 위한 펜대를 미련 없이 꺾었다.

부러지고 꺾여나간 사랑이 이상적인 것이라 생각하는 이는 단언컨대 한 사람도 없으리라.
미소와 충만감으로 가득찬 모습의 사랑을 꿈꿔보지 않은 이가 누가 있을까.

하지만 제대로 시를 읽은 사람이라면 감히 시인에게 돌을 던지지 못한다.
진정 사랑해본 자들 중 어딘가 부서지지 않아본 이 역시 없을 것이니.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황지우 시인 <뼈아픈 후회> 중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이 진실한 사랑의 징표였음을 말하면서 시인은 비감(悲感)해 한다.

물론 서로를 다치게 하는 것이 사랑일 수는 없는 법이다.
부부 간 폭행 실태를 다룬 고발 프로그램 한 편만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날아다니는 접시들과 서로의 가슴을 찢어발기는 폭언 욕설들.
그건 사랑이 아니다.
그건 강자가 약자에게 마음껏 휘두르는 더럽고 잔인한 폭력성에 다름 아니라 나는 확신한다.

헌데 어째서 시인은 망가뜨리고 부서지는 행위가 사랑의 징표라 회상하는가.
사람이란 누군가를 사랑할 때조차 자신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이다.

자신의 방식대로 사랑하면 반드시 상대방이 상처를 입는 순간이 오고, 바로 그 과정의 중첩됨으로 사람들은 서로를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리고 가’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시인은 서로를 온당히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 이것뿐임에 이토록 서러워하고 있는 것이다.
압도적인 시는 또 있다.


몸에 한 세상 떠넣어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풀어진 뒷머리를 보라
파고다 공원 뒤편 순댓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황지우 시인, <거룩한 식사> 중


요즘은 아버지가 식사 하시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된다.
아버지가 밥알을 씹으실 때,겨울 삭풍에 상기된 피부와 거뭇한 수염들이 함께 씰룩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느닷없이 김훈 작가의 글 한 편이 떠올라 가슴을 때린다.


‘밥벌이도 힘들지만 벌어놓은 밥을 넘기기도 그에 못지않게 힘들다.
술이 덜 깬 아침에 골은 깨어지고 속은 뒤집히는데, 다시 거리로 나아가기 위해 김나는 밥을 마주하고 있으면, 밥의 슬픔은 절정에 이른다.’
- 김훈 작가, <밥벌이의 지겨움> 중


이 밥은 오늘 벌어놓은 밥이기도 하지만 내일의 밥을 벌기위한 밥이기도 하다.
막걸리와 삭은 김치와 산나물들로 뒤죽박죽인 위장에 밥을 밀어 넣는 그 손짓이 아들에겐 그토록 서러워 보이건만 오늘도 아버지는 식구들이 잠든 밤, 홀로 꿋꿋이 밥알을 씹어 삼키신다.

그래서 요즘은 한창 글을 쓰던 와중에도 아버지가 식기를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곧장 나와 옆에 앉는다. 그리고 되지도 않는 농(弄)을 마구 지껄인다.

조금이나마 웃으시며 식사하시라고. 내 행동의 모든 변화가 바로 황지우 시인의 <거룩한 식사>에서 나왔으니, 진정 시의 힘은 위대하다 하겠다.

짧지만 일목요연하게 독후감을 작성하는 능력이 없음이 이토록 아쉬운 건 오랜만인 듯하다.
나의 능력부족으로 인용하지 못한 시가 아직 많건만 벌써 내 이 잡문은 A4 용지 두 페이지를 넘어서는 참이다.

시를 읽고 싶으나 현대시들 특유의 난해함 때문에 망설이시는 분들에게 간절히 일독(一讀)을 권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P.S : 시를 인용하기 위해 필사 노트를 훑어보면서 다시 한 번 감동 받고 말았습니다.
아무래도 글 게재하는 대로 시집을 찾아 다시 읽어봐야 겠네요. ^^

하늘마음
06.09. 10:32  
우리 아들 덕분에 엄마도 열렬히 더 좋아하게 된 경우...
김훈 작가의 <바다의 기별>도 참 좋더라구요.
<개>는 참으로 철학적이고 많은 것을 우리 삶에 반추해 보게 하구 말이야.

아들아....

책은 죽는 날까지 엄마의 위로자며 지원자며, 친구가 될 것 같아.
그래서 무지 다행이고 행운아라고 생각해.
그 중요성을 느꼈으니까...

우리 아들, 딸도 그런 것 같아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

말 안해도 알 거야...
오늘도 화이팅...

너의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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