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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치듯 나를 전율시킨 최고의 시구;
산골청년
[2014-05-28 20:4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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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군대 시절 얘기. 워낙 빈번하다보니 민망한 감이 있지만 별 수 없다. 2년 남짓한 군생활의 기억이 아직은 내 뇌리에는 강하게 박혀있는 모양이다. 21개월의 군생활과 이제 5개월째로 접어드는 민간인 생활. 아직까지도 군대 얘기가 더 현실처럼 생생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당신의 뱃속에 나를 안고 다니던 시절부터 나의 어머니는 나의 독서에 지대한 관심과 노력을 바쳐오셨다. 내가 스스로 책을 골라 읽기 전까지, 글도 모르는 아기를 앉혀놓고 동화책을 읽어주시는 것은 물론 피곤한 일과 후 일출의 새벽까지 모니터 앞에서 내가 읽을 책들을 고르시는데 전념하시던 것이 나의 어머니였다. 이러한 노력을 숙고해 볼 때, 내가 책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두 모자 앞에 ‘입대’라는 시련이 닥쳐왔다. 자대(훈련소 수료 후 남은 군생활을 보내게 되는 곳)에서야 소포 등으로 책을 받으면 그만이지만, 훈련소에서는 종교 서적을 제외한 어떤 읽을거리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상식적으로는 ‘그깟거 한달 책 안 보면 그만’ 이라 생각될지 모르겠으나, 우리 모자에겐 전혀 다른 문제였다. 엄마와 나. 생의 시련이 닥쳐올 때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당사자는 책을 부여잡고 다른 하나는 관련된 책 구절을 읊어주는 것이 우리에겐 상식으로 통했다. 헌데 책 없이 남자의 생애 중 몇 안 되는 큰 시련에 부닥친다? 말 그대로 비상이었다.

머리를 싸매고 골몰하던 중, 어머니가 아이디어를 내셨다.

‘아들아, 내가 매일 손편지를 내게 쓸 때 시 몇편을 골라 함께 써서 보내주마. 설마 군대가 아무리 삼엄한 곳이라 한들 어미의 손편지 내용까지 검열이야 하겠니.’

모든 남자에게 그랬겠지만, 군대란 무엇 하나 장담할 수 없는 세계였기에 나는 즉각 수긍할 순 없었다. 허나 어머니와 눈이 마주치고는 그저 ‘그거면 되겠다’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저 검열당해 편지를 못 받게 되더라도 그저 ‘잘 받았아 읽었노라’라거 대답하리라 마음속으로 조용히 각오하면서...

하지만 어머니의 간절한 바램대로 어머니의 편지는 이틀에 한번 꼴로 내게 무사히 전달되었고 거기에는 무수한 영미권 시들과 한국 대표 시인들의 시들이 빼곡이 아로 새겨져 있었다. 처음으로 힘과 복종만이 존재하는 남자의 세계에 발을 내디딘 문학소년이 그 시들을 생명수처럼 달게 들이켰음은 물론이다.

평소 특유의 난해함 때문에 박해받아온 시는 한 훈련병에게 그렇게 왔다.

전역 후, TV에서나 볼 수 있던 예쁜 여자들이 온 거리와 강의실에 천지인 바깥 사회에서 나는 한동안 시를 찾지 않았다. 세상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듯한 기분에 취한 채 그저 의무감으로 읽은 시는, 숙면을 위해 유럽 어느 모텔방에 놓여있었다던 성경책과 다를 바 없었다.
내가 다시 시를 찾아 나선 건 세상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에 월세 들어 산다는 무서운 진실을 깨달은 어느 날 오후였다.

본능적으로 유령의 그것처럼 도서관을 배회하던 내 눈에 콱 들어박힌 책 한권. 오늘의 주인공. ‘벼락치듯 나를 전율시킨 최고의 시구’였다.

‘관 뚜껑을 미는 힘으로 나는 하늘을 바라본다’
- 이성복, <아주 흐린 날의 기억>에서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 서정주, <자화상>에서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 백선,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선량한 아버지와/ 볏짚단 같은 어머니, 티밥같이 웃는 누이와 함께/ 거기서 너는 살았다’
- 이성복 <모래내 ` 1978년>에서

109명의 현직 시인들이 직접 꼽은 압도적인 시구들과 담담히 엮어낸 짤막한 단상들... ‘아플수록 시는 더욱 잘 읽힐 것이다’라던 한 대중 철학자의 허풍 같던 장담이 현실로 왈칵하고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고통에 육박치 못한 삶에서 읽었다면 기껏해야 지적 허영으로 암기하고 말았을 시구들은 그처럼 내게 날카로운 메스처럼 환부를 파고들었다.

존경해 마지않는 작가 김훈 선생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한 책을 읽기 전이나, 그 후나, 그 인간이 달라진 게 없다면 구태여 책을 읽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고등학생 시절 이 인터뷰를 접하고 마치 성경 속 신의 말씀처럼 열성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더랬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한 인간을 변화시키는 책은 존재할 것이고, 그런 책은 분명 위대하다. 반면 ‘벼락치듯 나를 전율시킨 최고의 시구’는 엄격히 말해서 나를 변화시키는 못하였다. 고작해야 세상에서 나만 이런 고통을 안고 사는 것이 아니라는 확인만이 이 얄팍한 책에는 담겨있을 뿐이었다. 책을 닫은 지금이 지나도 나는 여전히 바보처럼 도전하고 깨질 것이고, 비이성적인 사랑의 아픔에 몸부림치며 발광하리라. 그렇다면 이 책은 진정 나에게 무용했는가.

아니. 사람은 이성적으로 계획을 수립하고 앞으로 전진고자 하는 존재이지만, 그와 동시에 ‘공감’이라는 괴상한 본능을 지니고 있는 동물이기도 하다. 나의 고통을 털어놓고, 상대가 무엇이든 그에 반응하고 감응할 때 절로 가슴속 지독하게 응어리진 어혈이 풀리는 듯한 감정을 느끼고야 마는... 해결책은 있어도 좋지만 없어도 여전히 좋다. 이상하지만, 그게 내가 보고 경험한 인간이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느냐는 지인들의 질문에 나는 사람에 따라 간간히 시들을 권하곤 한다. 특히 자신이 가진 병을 치유하기 위한 처방전만을 애타게 찾아온 이들에게는 특히 시집을 권하게 된다. 더 아프고 쓰리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생에 깔린 채 가슴속에서 뭉쳐온 어혈은 풀릴테니까.

‘그대 언 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
-송기원, <시> 에서

하늘마음
06.07. 11:46  
아들아,

이 글을 보니 너를 앞에 두고 있는듯 반갑기 그지없구나.
이 코너를 그간 안들어 왔지.

아들이 바빠서 글을 안올리기에 그런가보다 하고 있었다가 간혹 아들이 그리우면 네가 올린 후기도 읽고 군대있을 때 너와 편지를 교환하던 '스무살 청춘인 아들에게' 코너의 글을 읽곤 했단다.

오늘도 아들이 써놓은 글을 읽으려고 들어오니 새 글이 무려 두 개나 올려져 있으니 너의 사진을 두 장 받아본 것처럼 한 장 먼저 찬찬히 들여다 보듯 읽었구나.

그랬지...
어려서 아니 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책을 너의 양식으로 삼았었다.
안먹이면 클나는 것 말이다.
그게 책이었다.

태교를 할 때도 책을 읽어주고 엄마 뱃속 안전한 곳에 있는 네게 말을 걸곤 했었지.
행복했지만 약간의 불만은 엄마가 직장생활을 해야 하므로 정말 엄마 맘껏 태교를 할 수 없었다는 거였단다.

그런 저런 제약조건에서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최선의 태교를 할 때 책읽어주기는 아주 큰 비중을 차지했었지.

그리고 군대에 갔을 때, 네가 책의 먹이를 못먹을까봐 머리를 굴리다 생각해낸 것이 편지로 네게 시를 필사해 보내는 것이었고 넌 엄마가 보낸 시를 영양제 먹듯이 잘 받아 먹었었지.

네가 힘든 상황에 직면할 때 책을 펴는 것을 보면 엄마가 제대로 너를 키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단다.

아들아,

글이 많이 깊어졌네.
자신의 현실도 깊숙이 담고 있고...

백석 시...
언제 들어도 좋구나.

엄마가 좋아하는 백석는 다 아려.
읽을수록 아려오더라.

그래서 백석 시라면 환장하는지도 모르겠어.
이 책 엄마도 보고 싶구나.

아들도 열심히 책과 삶을 잘 섞어 깊어지게 하는데 엄마도 더 열심히 읽고 넒어져야겠구나.
보고싶은 마음을 네 글로 대신하니 오늘 밤은 아주 깊은 잠을 잘 것 같아...
고맙다. 아들아....

너의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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