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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루스 노부스 - 진중권
산골청년
[2014-06-04 18:4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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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겔루스 노부스 > - 진중권

        ‘꿈보다 해몽’ 이란 말이 있다. 본디 실제 현상에서 벗어난, 시쳇말로 오바(?)하는 해석론들을 비꼬는 뉘앙스로 주로 쓰이곤 하는 말이다.

내가 읽던 ‘앙겔루스 노부스’를 슬쩍 들춰본 동아리 여자후배 한 명이 확신에 가득 차 남긴 말이기도 하다. 어째서 우리나라 대표 미학자의 진지한 저서가 ‘꿈보다 해몽’이라는 그리 명예롭지 못한 인상을 남기게 되는 걸까?

         이 모든 논란은 (이 책의 제목이자 표지 그림이기도 한) 파울 클레의 ‘앙겔루스 노부스(신천사)’라는 그림과 그에 대한 해석에서 발발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조금 눈썰미가 있으신 분들이라면 이 책 표지에 어린아이 낙서로 밖에 보이지 않는 괴상한 그림 하나가 인쇄되어 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신체 비율에 우스꽝스러운 표정, 게다가 마땅히 두 팔이 달려있어야 할 자리에는 천사의 날개는커녕 노계(老鷄)의 날개로 밖에 보이지 않는 앙상한 날개 두 개가 허우적거리고 있다.

        이런 그림의 제목이 무려 ‘앙겔루스 노부스(신천사)’라 한다. 별칭, ‘역사의 천사’. 누가봐도 과분해 마지않아 보이는 이 작품을 보며 저자는 놀랍게도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일찍이 롤랑 바르트가 스투디움(studium, 어느 예술작품에서 객관적으로 발견해 낼 수 있는 공통된 특징)과 푼크툼(punctum, 사회적 기호와 관계없이 수용자 자신만이 예술작품에서 느끼는 주관적인 인상, 느낌)을 구별한 것에 따른다면 저자는 푼크툼을 아주 제대로 느낀 것이 틀림없으리라 생각했다.

미학적 감각의 무신경함 때문인지 나는 저 그림을 아주 웃기지도 않는 그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자의 ‘해몽’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 천사의 머리는 몸통과 날개를 합친 것만큼이나 크다. 저것이 바로 몸에 비해 의식이 과잉발달한 근대적 인간의 조건이다. 삶의 한복판에 뛰어들지 못하고 끝없이 관념의 세계만 발전시켜야 하는 지식인의 조건이다.
- 본문 252p

# 날개를 편 천사. 그것은 헛된 저항이다.
아무리 날갯짓을 하려해도 천사는 파라다이스로 날아갈 수 없다.

그래도 천사는 날개를 접을수가 없다. 강한 바람 때문에 접으려 해도 접히지가 않는다.
오늘 날 우리가 처한 상황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우리가 저항을 한다고 현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안다. 그렇다고 저항을 포기할 수는 없다. 바람 때문에 우리는 날개를 접을 수가 없다. 저항을 위해 우리 자신에게 장밋빛 미래의 헛된 약속을 할 필요는 없다. 성급하게 급조된 희망의 그림을 다시 그릴 필요도 없다. 우리는 그저 저항을 할 뿐이다.
-256p

        신선한 충격이라는 말이 이런곳에 적절할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나는 두터운 베게로 느닷없이 뒤통수를 후려맞은 듯 정신이 아득해 졌다. 조금은 아스트랄한 초등학생이 심심풀이로 끄적여 놓은듯한 허접한 그림이 수많은 함의를 담은 ‘작품’으로 변모하는 순간이었다.  

        몸이 지탱하기도 버거워질만큼 비대해진 머리와 겁먹은 듯 정면을 응시하지 못한 채 방황하는 신천사의 시선은 마치 조금의 미화도 없이 그려낸 나의 자화상 같았다.

거기에 비상할 수 없이 퇴화된 날개를 접지 못하고 책 좀 읽은 자의 마지막 자존심인양 펴고 있는 모습까지도. 모든 것이 나였다. 이 놀라운 그림을 말없이 5분간 바라보며 나는 눈시울이 조금은 간지러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이 그림에 대한 발터 벤야민의 글을 인용하며 ‘진보라는 폭풍’ 과 같은 단어들을 나열해 놓았다.

#“아마 그는 그 자리에 머물러 죽은 자를 깨우고, 패배한 자들을 한데 모으고 싶은 모양이다. 하지만 한 줄기 난폭한 바람이 파라다이스로부터 불어와 그의 날개에 와 부딪히고, 이 바람이 너무나 강하여 천사는 날개를 접을수가 없다.
이 난폭한 바람이 천사를 끊임없이 그가 등을 돌린 미래로 날려 보내고, 그동안 그의 눈앞에서 폐허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아만 간다. 우리가 ‘진보’라 부르는 것은 바로 이 폭풍이리라.“
- 252p, 발터 벤야민 <역사의 개념에 관하여> 중

         허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저자와 벤야민의 푼크툼일 뿐 나의 것은 아니었다. 내게 이 그림은 어디까지나 이름 모를 예술가가 우연히 그려낸 나의 자화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꾸준히 책을 읽어오며 깨달은 점이 있다면, 끝내 이해도, 공감도 되지 않는 글은 과감히 건너뛰어도 좋다는 것이었다. 이런 글들은 모두 조금 더 나이가 들어 다시 읽었을 때 독해되던지 영영 독해되지 않던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지금 나의 것이 될 수 없는 문장을 끌어안고 끙끙 앓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이젠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비난의 표현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 말도 있지 않던가? ‘열권의 책은 세계에 관한 열가지 진리가 아니라 세계에 대한 열 가지 해석일 뿐이다.’라는. 어차피 일부 자연과학의 연구대상들을 제외한 세상 거의 모든 것은 해석들뿐이다.

소크라테스를 위시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애타게 찾아 헤매온 절대적 진리가 없는 세상에서 흥미로운 ‘해몽’은 되려 자칫 사장(死藏)될 뻔한 ‘꿈’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위치를 복원시키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앙겔루스 노부스’가 내게 초등학생이 장난으로 그린 정도의 낙서가 될 뻔한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러한 경지에 올랐을 때, ‘해몽’ ‘창조’에 가까워진다.


하늘마음
06.07. 11:56  
아들아.

이제는 이 코너에 자주 들어와야겠다.
숨박꼭질할 때 뭔가가 숨어 있을 곳을 찾듯이 아들의 글이 숨어 있지 않나 자주 들어와 봐야겠어.

산골엔 안개비가 온단다.
안개가 아니고 안개비...

깨밭골에서 풀 뽑았는데 온통 안개천지..
앞도 안보이고 ...

혼자 갔는데 등이 서늘했단다.
게다가 안개비까지...

어휴...

그러나 누가 그랬지.
'안개 속에 서면 누구나 혼자'라고...

혼자임을 알게 되자 마음에서 울려나오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서 아주 좋더라...

이내 장갑도 젖고 머리, 옷도 젖고 추웠지만 마음은 아주 맑아서 한동안 서있었지.

아들아,

책을 다방면으로 보는 것 같아 맘이 놓인다.
이제는 아들이 엄마에게 책을 추천하게 되었으니 엄마는 네가 와서 책을 안겨줄 날만 기다려야겠구나....

아들아,

엄마도 이제 다락방에서 9일 기도하고 자야겠구나.
안개비에 젖은 몸으로 일을 해서인지 참 피곤하구나.

그래도 아들의 이 글을 보니 힘이 생긴다.
안그래도 오늘 많이 다운된 맘을 안고 살았는데...

아들도 잘자길...

너의 엄마 배동분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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