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마음농장 홈페이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전태일 평전> - 조영래 변호사
산골청년
[2014-07-03 13:27:54]
첨부파일 : 20100701.01100101000001.01S.jpg (7.8 KB) 다운로드받은 횟수 : 5
IP :

        고백하자면, 나는 모든 종류의 책들 중 강렬하고 불온한 문체를 유독 선호하는 편이다. 강렬함이란 읽혀진 문장이 가슴에 스며든다는 느낌보다는 날카로운 뭔가로 쑤시고 들어오는 듯한 문장을 칭하는 것이고, 불온함은 기존의 사회적 가치와 통념들을 대놓고 혹은 은근슬쩍 비판하는 저자의 거침없는 문체적 태도를 말한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모든 신은 죽었다.”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36P

“기성 육법전서를 기준으로 하고/혁명을 바라는 자는 바보다/혁명이란/방법부터가 혁명적이어야 할 터인데/이게 도대체 무슨 개수작이냐”
                                                                     - 김수영 시인, 『김수영 전집 1』 수록시, <육법전서와 혁명> 中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확신만이 내가 제대로 살 수 있는 가능성이 된다”
                                                                    - 이성복 시인,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中

        군대에서 읽었던 『전태일 평전』 역시 정확히 위의 글들과 같은 강렬함과 불온함을 동시에 갖춘 책이었다. 좀 더 정확하게는, 분신 자결 사건을 제외하곤 다소 밋밋하고 지루하게 대중에게 알려져 있던 故 전태일 씨의 나머지 생애가 평전을 쓴 조영래 변호사에 의해 감히 김수영 시인의 그것과 맞먹는 강렬함과 불온성을 획득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들에게는 ‘푸른 하늘을 쳐다볼’ 권리고 없고, ‘오늘을 생각할’ 시간도 없으며, ‘내일에의 꿈을 키운다.’는 건방진 여유는 더더구나 없다.”
                                                                                                                                    - 『전태일 평전』

“현실이야말로 가장 좋은 교사다. 그 현실의 가장 깊은 질곡 한가운데에서 몸부림치면서 자기의 심장으로 느끼고 스스로의 머리로 생각할 수 있었던 사람이야말로, 교과서의 해설이나 권위자의 암시를 통하여 왜곡되는 일이 없는 현실의 벌거벗은 모습을 생생히 본 사람이야말로, 현실에서 가장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자신의 인간성을 가장 열렬하게 지킬 수 있다.”
                                                                                                                            - 『전태일 평전』, 67p

        故 전태일 씨의 인생행로는 경탄이 절로 나올만큼 위대한 것이었으나 이러한 생애가 대중에 알려지게 된 데에는 광산의 암석 속에 단단히 박힌 광물을 찾아내듯이 전태일이란 한 인간을 집요하게 발굴해 낸 조영래 변호사의 집념이 필수적이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한 개인이 위대한 삶을 살아내는 것과 그러한 삶이 잊히지 않고 대중의 기억 속에 영원히 각인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오늘도 보람없이 하루를 보내는구나. 하루를 보내면서 아쉬움이 없다니, 내 정신이 이렇게 타락할 줄은 나 자신도 이때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 『전태일 평전』, 전태일 본인 수기, 116P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 김수영, <거미> 전문

        ‘예쁜 게 죄라면 나는 징역형’이라는 농담을 패러디 해보자면 ‘하루를 아쉬움 없이 보내는 게 죄라면 나는 총살형’ 정도가 되겠다. 오직 희망하는 사람만이 ‘몸이 까맣게 타’버릴 때까지 아쉬움에 발을 구르게 마련이다. 아쉬움이 없다는 것은 곧 희망함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 대문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에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라고 쓰여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묘비에나 어울리는 해탈의 언어이지, 살아 생동해야 마땅한 인간에게 어울리는 언어는 아니다. 살아 생동하는 청년에게 어울리는 단어는 역시 ‘해탈’보단 ‘희망’이다.
        하지만 여기서의 ‘희망’을 말 그대로의 희망차고 밝은 무언가로 연상해서는 곤란하다. 전태일에게 희망은 차라리 갖지 않았으면 좋았을 이상(理想)이었음에 틀림없었을 것이다. 김수영 시인의 한탄대로 ‘바라는 것’은 한 인간을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까지 내몰고 마는 어떤 것이다. 전태일 역시 차라리 그의 운명을 뒤바꾼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몰랐더라면 하고 원망해 마지않았던 불면의 밤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전태일은 거대 권력의 압제와 자본가들의 폭정에 굳건히 맞서 싸운다. 사실 ‘싸운다’라는 단어선택이 적절한지가 의문이 들 정도로 힘의 차이가 현저한 상황이었다. 이기리라는 희망이 전무한 투쟁을 이어갈 수 있게 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대체 어떤 종류의 각오가 약관(弱冠)을 막 넘긴 나이의 청년에게 분신(焚身)으로서 ‘인간 선언’할 힘을 주었던 걸까.

# 날개를 편 천사. 그것은 헛된 저항이다. 아무리 날갯짓을 하려해도 천사는 파라다이스로 날아갈 수 없다. 그래도 천사는 날개를 접을수가 없다. 강한 바람 때문에 접으려 해도 접히지가 않는다. 오늘 날 우리가 처한 상황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우리가 저항을 한다고 현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안다. 그렇다고 저항을 포기할 수는 없다. 바람 때문에 우리는 날개를 접을 수가 없다. 저항을 위해 우리 자신에게 장밋빛 미래의 헛된 약속을 할 필요는 없다. 성급하게 급조된 희망의 그림을 다시 그릴 필요도 없다. 우리는 그저 저항을 할 뿐이다.
                                                                                                           -진중권, 『앙겔루스 노부스』, 256p

        그건 저항 자체가 갖는 유의미성 이었을 것이다. 결과로서 의미를 타율적으로 부여받는 범인들의 행동양식과는 궤를 달리하는, 저항하는 과정 그 자체를 긍정해가는 자율적 의미부여. 그것이 아니고는 그야말로 실낱같은 상황 개선 가능성을 부르짖으며 자신의 몸에 기름을 부을 수는 없는 것이다. 저항해 가는 과정 자체에 자기 스스로 부여하는 의미. 그것은 자신이 자신에게 ‘부여하기로 선택’한 것이므로 철저히 자율적이고, 또한 다른 가치와 비교불가한 절대적 가치를 갖는다.

         삶에 관해 고민하는 동생들 두엇이 ‘진지한 책’을 추천해 달라하기에 며칠을 고민하다 『전태일 평전』을 추천해 준 일이 있었다. 진지(眞摯). ‘진정으로 움켜잡다.’라는 뜻의 이 단어의 뜻에 가장 잘 부합하는 책은 내가 아는 한 『전태일 평전』이다. 한 명에게는 내 책을 직접 빌려주면서 하지 않아도 될 고뇌의 씨앗을 건네주는 듯해 마음이 영 좋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숙고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소크라테스의 외침처럼, 최소한의 사리구분조차 하지 못한 채 축구공처럼 시대가 날 드리블 하는대로 굴러다니다 생을 마감하는 것보다는 고통스러우나 숙고하고 행동하는 삶이 더 인간다운 삶일 거라는 생각을 하며 애써 내 마음을 다독였었다.

        혹여 『전태일 평전』을 읽을까 말까 고민하는 분들이 있으시다면, 굳이 추천을 하고 싶지는 않다. 이런 류의 진지한 책을 읽고 난 후가, 읽기 전보다 행복하리라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평소라면 아무 거리낌 없이 시청하던 노동자 파업 관련 뉴스가 며칠이고 안 해도 될 고민거리가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허나 위 문단에서 말했듯이, 좀 더 인간답고, 더 나아가 함께 인간다워질 수 있는 힘을 지닌 ‘진지(眞摯)한 책’을 찾는다면, 주저 없이 『전태일 평전』을 추천하는 바이다.

        
        
하늘마음
07.07. 09:08  
무언가는 안다는 것은 힘이 생기는 일이다.라고 말하려다가도 무언가에 대해 깊이 안다는 것은 가슴아프고 분노하게 만든다는 말도 곁들여 한다는 사실이 좀 그렇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삶을 보다 제대로 된 눈으로 바라보고, 함께 가기 위해서는 우리는 내가 가는 길 주위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고, 90세가 훨씬 넘은 레지스탕스 노투사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는 짧은 외침을 외면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단다.

엄마가 무슨 말을 하려 하는지 잘 알거야.
스테판 에셀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일찍부터 의무라도 지우듯 얘기한 것이
"네가 행복해야 남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법이야. 그러니 항상 해복해야 한다."고 말이라지....

엄마도 그래.
나날이 행복하거라.
살다보면 어떤 인연이 너의 삶을 힘들게 할 때도 있을 거야.
그럴 때는 내버려 두거라. 그 사람은 그 사람의 몫을 해내고 있는중이니까.
그것을 네가 판단하고 심판하려 하지 말아라.

그리고 너의 '오늘'을 행복으로 이끄는 일이 무엇인지 늘 생각하며 살기를 바래.

말이 또 샜다.
어제는 비가 잠깐 왔는데 오늘은 햇살이 아주 좋네.
새소리도 목을 빗물에 씻은듯 맑은 소리를 내고 있어.
좋은 하루되거라.

너의 엄마 배동분 소피아
보헤미안
07.08. 11:33 삭제
전태일......, 따뜻한 가슴.
전 재산인 버스비로 동료에게 빵을 사서 먹이고 자신은 몇 시간을 걸어 간 사람.
그 전태일이 청년 변호사 고 조영래의 삶의 행로를 바꿨고 조영래 번호사의 삶이 박원순 현 서울시장의 인생행로를
바꿨다는 사실을 우리 사회에서 과연 몇 사람이나 알고 있는지 답답하군 그래.

영원한 청년시인 김수영은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서는 풀' 이렇게 민초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노래하며 분노하고 피 토하듯 절규 했었지요.
이 말의 연원은 '詩經'에 있는데 '草上之風草必偃' 초상지풍초필언 즉 풀 위로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는다 뜻으로
신영복 선생님의 '강의'를 보면 "백성들 편에서는 노래로써 위정자들을 풍자하면서 '바람이 불면 풀은 눕지 않을 수 없지만 바람 속에서도 풀은 다시 일어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초상지풍초필언' 구절 다음에 '誰知風中草復立'
수지풍중초부립 - '누가 알랴, 바람 속에서도 풀은 다시 일어서고 있다는 것을' 이라고 풍자하고 있다. '詩經'에서는
이와 같이 비판과 저항의 의지가 많이 발견된다" 고 하셨습니다.
가장 힘 없고 보잘것 없는 민초들이 가장 무서운 것임을 몰랐던 위정자들의 말로는 그동안 우리가 익히 보고 들었던
그대로입니다. 현 상황은 어떻습니까? 답답하지 않나요?
하늘마음
07.09. 11:07  
보헤미안 오라버님....

글을 읽으며 목소리가 쟁쟁하니 들려오는듯합니다.
영원한 청년 시인이라는 표현이 찡하게 와 닿아요.

왠지 김수영하면 그의 시가 먼저 떠오르기 보다는 그의 삶이 절절하게 다가옵니다.
그의 절절한 삶, 절절한 사랑,,분노...

신영복 선생님의 <강의>를 읽은지는 오래 되었건만 어째 이 머리는 남아 있는 것이 이토록 흐릿한지 오라버님 글을 읽고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풀....
모진 바람이 불면 누웠다가 다시 일어서는 풀...

요즘 그 시를 자주 떠올리며 '다시 일어서야지'하는 옹알이를 해봅니다.
염원이 절절한 옹알이는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믿기에 하루 일상 중 옹알이를 하는 일은 신성하기까지 하더라구요.

아론이 오라버님의 글을 보면 반가워 하겠어요.
누군가 자신의 책 이야기에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청춘에게는 큰 힘이 될 거예요.

태풍이 온다고 하던데 그래서인지 무지 덥고 따갑네요.
그 햇살 속으로 점심 후에 올라갑니다.
풀이 아주 장난이 아니예요.

배 소피아
산골청년
07.09. 04:46  
보헤미안 아저씨!

며칠전, 우연히 걸려온 전화를 받고 아저씨가 입국하셨다는 소식에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요. ^^

진정 귀한 말씀을 이 짧은 리플에 담아주셨네요. 한 혁명가를, 한 변호사를, 한 시인을 알기는 쉬울지 모르나 각 개개인이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받았고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일일이 통달하기란 결코 1,2년의 공부로 되는 것이 아니지요.

아저씨 글을 읽으면서 찡해지는 가슴을 멈추기 힘들었습니다. 책과 외침으로서 예부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선조들의 사상이 후대인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사상의 역사를 읽으면서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아마 역사를 사랑하고 공부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러하겠지요.

요새 뉴스를 보고 있으면 큼지막한 납덩이를 삼킨양 답답한 것이 일상인 듯 합니다. 그리고 일상이 되어버린 답답함은 일상이 된 모든 것이 그러하듯 하루가 다르게 무디어져 갑니다. 어쩌면 이것이 위정자들의 의도인지도 모를 일이지요. 악행을 멈출 수 없다면, 차라리 그 악행을 일상화시켜 대중의 거부감과 분노를 무디게 하는것. 이런 불순한 의도를 거부하는 길은 피오르는 분노의 칼날을 지속적으로 벼려놓는 것 뿐인 터인데, 뉴스속 사건이 어디까지나 '타인'의 일이라 인지하고 있는 한 영 쉽지 않아 보입니다.

곧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를 다시 읽을 생각입니다. 책 한권으로 인생이 바뀌지는 않는다고 사람들은 되뇌이곤 하지만, 그럼에도 읽고 또 읽으려고 해요. 전태일 씨의 生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꿨듯 책도 그러하리라 믿어면서요...

태풍 이름이 귀여운 '너구리'라 그런지 태풍의 영향권에 있다기보단 가벼운 소나기철 정도의 느낌이 드는 요즘이네요. 습한 날씨에 열대야를 비켜가시길 빌면서 이만 글 줄이겠습니다. ^^

산골청년 박선우.
박용석
07.18. 08:10  
누구는 아름다운 청년이라지만 ,,, 낯가러운 얘기고 ,,,죽지 못해 산 영원한 청년 전태일,, 행동한 사람 전태일

울진은 핵 발전소를 문제를 속히 해결해야지요. 해결의 방법은 행동인데 ,,

,귀농인들을 포함하여 모두가 귀 막고 눈감고 입 다물며 울진군은 보조금과 여러 은전으로 ,,,,,

핵 발전소 사고는 회복 불가능한 재앙이고 후세들에 대한 어른들의 무책임인데,,,

세상에 머리 좋은 사람은 많고,,, 글로 세상의 그릇됨을 많이 지적하고 울분을 토하지만 ,,,행동하지 않으면 잘못된

권력에 동조하는 것,,,집 앞에 핵 발전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위험해서 못 살텐데,,,대학 친구(벗) 하나 없었던

,전태일이 위대한 것은 어설픈(?) 이론에 근거해 노동자를 행동으로 사랑했다는 것,,,,
하늘마음
08.02. 11:55  
잘 지내시지요?

좋은 말씀입니다.

산골에는 비가 옵니다.
태풍이 온다고 해서 그런지 비가 자꾸 오네요.

밭에 갔다가 초보농사꾼과 함께 뛰어 들어 왔어요.
집에 오니 손님이 와 계신데 제 모습은 비를 맞아 ...

비가 또 잠깐 그치니 매미소리가 비 그침을 알려주네요.

여름 잘 보내시고 건강하시길...

배 소피아
이전글 | 무라카미 하루키,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3] 산골청년   2016/03/16
다음글 | <바다의 기별> - 김훈 [1] 산골청년   2014/07/03

  당신은 2002년 2월 이후 째 방문자 입니다.    산골남주인에게 메일보내기산골여주인에게 메일보내기    

Copyright 2002. www.skyheart.co.kr 하늘마음농장 대표 박찬득 핸드폰 : 010-6656-3326
사업자번호 : 507-03-42837 통신판매업 : 제울05-통075 개인정보책임자 : 배동분
주소 : 경북 울진군 서면 쌍전리 364 연락처 : 054-783-3326 개인정보취급방침  이용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