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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 - 생떽쥐베리
산골청년
[2016-04-07 01: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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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 파블로 네루다’

서울 도심 거리를 걸어가다가 대형 서점 건물 벽면에서 시 한 구절을 보았을 때의 전율을 잊지 못한다.
무어라 설명하기 힘든 낯선 감정이었다.

어느새 뭔가로부터 너무 멀리 와 버렸다는 거리감 같기도 했고, 기차 시간에 늦어 허둥지둥 집을 나서 택시에 올라탄 후 카메라를 놓고 와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허망함 같기도 했다.

「어린왕자」 속 어린왕자는 이상한 존재다.
원래 그러한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하여 의문을 품는다.
이에 대한 우리 어른들의 대답은 궁색하기만 하다.

‘원래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은 후의 어른들은 씁쓸한 두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세상에 ‘원래 그런 것’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 역시 한때 어른들의 ‘원래 그런 것’에 대해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던 어린왕자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 모두는 한 때 어린왕자였다.

사막에 조난당해 절망에 빠진 전투기 조종사인 ‘나’ 앞에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어린왕자가 나타난다.
소행성 B612.

아마 태양계 행성들을 제외하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할 이 행성에서 어린왕자는 지구로 왔다(젊은 세대들에겐 셀카 잘 나오는 카메라 어플리케이션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어린왕자는 지구로 오기까지 여러 소행성들을 여행했다.
그는 사람이든 행성이든 통치하고 싶어 하는 왕, 뭐든 소유하고 싶어하는 기업가, 명령에 따라 기계적으로 등대를 껐다 켜기를 반복하는 가로등지기, 술 마시는 자신이 부끄러워 더 술을 마셔대는 주정뱅이 등에 관해 이야기하며 예의 그 유명한 질문 한 문장을 덧붙인다.

‘어른들은 참 이상해!’

정상적인 어른이라면 누구나 어린왕자가 만난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적어도 한두번은 뭐에 덴 사람처럼 두 볼이 화끈거렸을 것이다.

희극적으로 희화화 되어 있긴 하지만, 어린왕자가 들려주는 어른들의 이야기는 사실 아이가 아닌 모든 어른들의 공통된 특징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어린왕자를 읽으면서 부끄러움과 민망함을 감추기 힘들었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소유하고 통치하고 싶어했던 기억, 영문도 모르는 채 그저 명령에 몸에 맡기고 기계적으로 명령을 수행하던 기억들이 환영처럼 책을 읽는 내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후 문득 궁금해 졌다. 분명 나였던 어린왕자는 어디로 갔을까?

나는 순수한 동심을 잃어버린 어른들을 비판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어른이 되었다는 건 다들 어떻게든, 꾸역꾸역, 적응해 왔다는 뜻이니까. 사회라는 어른들의 세계 안에서 발붙이기 위해선 다들 어쩔 수 없었다.

뜻도 모르는 수학 공식이나 영어 문장 구조를 통째로 암기해야 했으며 뭘 배우는 곳인지도 모르는 과에서 낙제하지 않기 위해 친하지도 않은 선배에게 시험 족보를 얻어내야 했다.

난생처음 만져본 총을 애인처럼 다루지 않았다는 이유로 얼차려를 받아야 했고, ‘여자는 원래~’로 시작하는 말이 서러워 잠 못 이루던 새벽들을 통과해야 했다.

그러므로, 어른이 됐다는 사실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씁쓸할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왕자」가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어른들로 하여금 자신의 유년기에 대한 ‘애도’를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애도는 흔히 생각하듯,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이나 상갓집에서 엄격하게 행해지는 예절들만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다.

사랑하는 이와 이별한 여자가 오랫동안 길러온 머리를 짧게 자르는 것도, 수능을 치른 수험생이 수험서들을 모아 불태우는 것도, 조국의 자유를 잃은 것을 통탄하며 소리 높여 곡하는 것도 모두 애도의 범위에 들어가는 행위다.
즉, 상실한 모든 것에 대한 모든 감정적, 행동적 반응을 모두 애도라고 볼 수 있다.

우린 다시는 어린왕자가 될 수 없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도 독자들은 여전히 어른들의 세계에서 어른으로서 분투해야 한다.

우린 그걸 안다.
책을 읽는 내내 깔깔 웃는 어린아이와 달리 어른들이 「어린왕자」를 읽고 숙연해지는 것도 다 그 이유에서다.

하지만 최소한 우리 마음속 어딘가에서 울고 있을 각자의 어린왕자들과 만나 ‘오랜만이네. 잘 지냈니?’ 라며 따듯한 인사 한 마디 정도는 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바로 그 ‘애도’를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어린왕자」는 앞으로도 오래도록 읽힐 불멸의 명작으로 남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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