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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 그 절창을 기억하는구나.
작성자: 하늘마음   등록일: 2012-06-01 18:17:20   조회: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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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

산골의 봄은 노란색으로 시작하지.
산중 깊숙이 들어와 둥지를 튼 우리 가족에게 제일 먼저 "봄이 왔어요."라며 수줍은 듯 말을 건내는 녀석은 생강나무꽃이야.

네가 군대 가기 전, 엄마 운동시킨다고 달렸던 그 언덕길 개울가에 핀 그 노란꽃...

가까이 가서 그와 코를 맞대듯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 꽃의 이목구비를 자세히 볼 수 없지.
다닥다닥, 옹기종기 모여 앉아 지난 겨울의 혹독한 시련을 갖가 얘기하는 것같아 그들 가까이 가면 절로 환청이 들리는 것같아.

그러다 지금은 민들레가 “나도 노랑이다”라고 생강나무꽃에 정신을 홀라당빼앗긴 산골 가족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단다.

산골가족의 눈에 황달기가 보일 무렵이면 자연스레 시선은 복사꽃으로 이동하여 황달기를 자연치유해 준단다.

지금은 개복숭아나무 위로 커다란 커텐처럼 햇빛 아우라가 둘러쳐져 더욱더 눈부신 날들이란다.

낯설고 절제된 군대라는 공간으로 갑자기 걸어들어갔으니 밝은 곳에서 갑자기 어두운 곳에 들어갔을 때처럼 눈이 침침하고 마음을 어디에 걸어두어야 할지 모를거야.

그러다 보니 그리움만이 내가 숨쉬는 횟수만큼 쌓여가고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그리움을 눌러도 눌러도 목화솜처럼 자꾸만 부풀어 오르겠지.

온통 주위는 움직임보다는 멈춤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는듯하고, 마음조차도 얼어버릴 것같은 그런 분위기..
그런 곳에서 지금 산골의 봄 풍경을 본다면 “미쳤어”라고 할만하지.

너도 기억하는구나.
박완서님의 자전적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 나오는 그 절창...“미쳤어.”

그 소설에 보면 여고생이었던 주인공의 상황은 정말 어디 숨쉴틈 하나 안보이는 피난민 신세, 둘러보면 등 기댈 곳은커녕 폐허에 폭탄이 떨어지고..그 와중에 섬세한 소녀의 눈에 목련이 사정없이, 도도하게 핀 것을 보고 소리치지.
“미쳤어.”

그리고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에도 또 한 번의 표현을 경기하듯 작가는 토해내지.

<북으로 피난 가면서 폐허가 다 된 마을에서 막 부풀기 시작한 목련 꽃봉오리를 보고 외친 미쳤어! 소리가 또 나오려고 했다. 이번엔 광기에 대한 겁먹음이었다. 불길한 걸 피하듯이 그 집 앞을 지나쳐 오면서그 백색과 꼭닮은 또 다른 백색이 의식의 밑바닥에 늘어붙어 있다가, 오래 전에 굳어 버리고 딱지 않은 감수성을 긁어 대는 듯한 가려움증을 느꼈다>

그 상황에 "미쳤어!" 그 외마디보다  더 숨막히는 표현이 없다며 그 책을 읽었었는데 너도 기억하는구나. 역시..

그래, 이제 막 가족과 떨어져 겨우 숨통만 트고 있는 낯선 부대에 산골의 풍경처럼 새싹이 파랗다 못해 파리하게 돋고 겨울을 난 새들이 목청껏 내지는 소리를 듣는다면 “미쳤어”라는 말 말고 더 어떤 군더더기를 붙여 표현할까.

그래, 그래도 봄은 오지.
어느 한 쪽의 인간이 속이 뒤집히고, 폭풍우는 만나 눈이 홰까닥 돌아가도 봄은 오고, 꽃은 피고 지고 열매를 맺지.
그런 것 하나하나를 인정하며 어른이 되어가는 거란다.



*

그래 우리가 자주 이야기했던 대목이구나.
“책을 읽기 전이나 읽은 후나 인간이 똑같다면 구태여 책을 읽을 필요가 없는 것”
맞지, 명문이고 말고지.

책을 읽음으로써 지혜를 얻고, 용기를 얻고, 스스로를 반성했다면 인간이 조금이라도 달라져야겠지.

그러나 달라지기는커녕 책을 많이 읽어 머리에 먹물이 좀 들었다고 사사건건 책을 들추어 내며 모가지가 부러지도록 꼿꼿이 치켜 세우는 사람도 있지.
어쩌면 그런 사람에게 책은 독일 수 있단다.
경계하고 경계해야 할 일이란다.

책을 제대로 마음으로 읽었다면 고개를 숙여 나를 먼저 들여다 보고 그런 다음에 고개들어 세상을 둘러봐야겠지
그렇지 않은 사람은 글자중독자일 뿐이다.

네가 그 말을 군대생활에 견준다니 옆에 있다면 등을 토닥토닥 두들겨주고 싶구나.
그래, 네가 입대할 때의 그 마음 잊지 말거라.

*

너의 그 다이어트에 대해서는 엄마가 할 말이 많지.
고등학생때 야식 등을 먹인 관계로 너의 몸무게는 100키로를 넘었지.

대학교에 들어가서 노력을 했지만 좀처럼 빠지지 않는다며 넌 자신의 끈기와 오기에 대해 의구심을 보이더구나.
그러더니 다시 한번 힘찬 도전을 한다고 했고, 통화에서  피눈물나는 노력을 하고 있음을 눈치챘었단다.

그런데 막상 몇 개월만에 30키로 이상을 감량하고 예전의 각선 모습으로 돌아왔을 때 네 고통과 인내가 어디까지 갔었는지 또한 감잡을 수 있었단다.

전세계가 다이어트에 열광을 하고 관심을 기울이지만 쉽지 않은 것을 그만큼 그것이 어렵다는 말과 상통한단다.
넌 그 당시의 노력을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지.

"엄마, 어떤 때는 학교 공부때문에 한밤중에 근처 야산에 올라가서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것을 참으며 하루에 운동하고자 나와 약속한 시간을 죽으라 완수할 때는 눈물이 날 때도 있었어."

그 노력, 그 인내, 간간히 엄습하는 실망감과 좌절감...잘 알지.
그리 짧은 기간에 네 자신과 한 약속을 지킨 너를 보고 엄마와 아빠는 '이제 홀로서기를 해도 제 앞가림을 잘 하겠구나'하고 점칠 수 있었단다.

그 과정의 노력이라면 넌 어떤 것도 잘 극복하고 네 자신이 그어놓은 선을 도달할 거라는 확신을 한단다.
그런데 편지에 쓴 내용을 보며 그렇게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보듬으며 목표에 도달했구나 하는 생각에 코끝이 찡해지는구나.


*

훈련소에 네 손을 잡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갔을 때 연대장님인가 설명을 해주셨지.
훈련을 아주 열심히 받는 훈련병들에 한 해서 포상 전화를 준다고..

네 성격에 엄마, 아빠 기쁘게 해드리려고 얼마나 죽으라 훈련을 받을까 집에 돌아와 걱정을 하니까 아빠가 걱정말라고 하시더라.

그럴 것같아서 훈련소에서 그 말을 듣자마자 포상 전화할 생각 말고 그저 네가 할 수 있는 페이스대로 훈련받으라고 했다고...

그 말 잘 해주었다고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전화벨이 울리더니 “엄마”하는 목소리가 튀어나왔지.

이거 잘못들었나 하는 순간 수신자부담 전화인데 받겠냐고 했던가 그 비슷한 안내가 당황하여 안절부절 못하는 귓구멍에 꽂히더구나.
그때서 “아, 내 아들이다” 하고 웅얼거렸지.

잠시 후 다시 들려오는 네 목소리.
“엄마”
“선우야”
“엄마”
“선우야”
“엄마, 나야”
“선우야, 엄마야”

너의 말보다 목소리 너머의 그리움이 먼저 귓구멍으로 들어와 앉더구나.
그 짧은 3분을 그렇게 서로 부르다 허비했지.
세상에서 3분이 이렇게 소중하고 애틋하기는 엄마 평생 처음이었단다.

네가 그토록 좋아하는 니코스 카잔차키스도 죽음을 앞두고 호소했지.
"적선하시오. 형제들이여, 나에게 십오분씩만 나눠 주시오"라고....


3분..
엄마는 3초로 인식이 되어 금방이라도 니 말이 반토막이 나서 끊어질 것만 같았단다.
시간이 없는데 무슨 말을 할까.

무슨 다른 말이 필요할까.
그렇게 서로를 부름으로써 그 다음에 올 말도 가슴에 부딪히는 것
그렇게 그렇게 그리움도 삭히는 법을 배우며 어른이 되는 거란다.

아들아,
우리 만날 날을 위해 그리움은 잠시 목젖 뒤에 숨겨두자꾸나.
배를 따뜻하게 하고 자거라.
넌 가끔 신경쓰면 배앓이를 하는데 그곳에서의 방법은 그저 배를 따뜻하게 하는 것뿐이지.

배에 두 손도 올려놓으면 온기가 오래 갈 거다.
엄마의 온기다 생각하고 잘자거라.

2012년 5월 3일
산골 다락방에서 아들이 언제나 우리 엄마라고 부르는 엄마가

[훈련병 편지4] 남다른 꿈을 꾸기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다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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