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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꽃
하늘마음
[2012-05-16 00: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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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왜 난 이제야 읽고 뒤로 자빠지는지....
진작에 읽었더라면 내 삶의 결이 한결 보드러웠을텐데 할정도로 내 맘에 들어오는 시집이다.

<순간의 꽃>
책 제목이 책 내용과 어쩜 그리 어울리는지...
책제목 아래 ‘고은 작은 시편’이라고 껌처럼 붙어 있는 소제목...

첫장을 여니 이렇게 쓰여 있다.


해가 진다

내 소원 하나
살찐 보름달 아래 늑대 되리




이 시집 안에 들어앉은 시들에는 제목이 없다.
제목이 없어 어쩌면 온전히 내 안의 시로 만들 수 있는지도 모른다.

가슴이 담기는대로 느끼면 되는 것이니...

짧은 글이 이토록 오래 정수리를 뒤흔들고, 잔잔한 감동의 여진으로 멀 리가 나는 책도 아주 드물다.

길고 어려운 글이 들어가야, 멋진 단어가 들어가야 반짝이는 글이라고 느끼는 시들을 읽다가 이런 시를 만나면 여간 행복한 일이 아니다.

군대가 아들 선우가 고은 시인을 좋아하다 보니 더 여러번 반복해서 읽는다.
그리고 하나하나 이 시집에 들어있는 시들을 필사하여 군인인 아들에게 보내주고 있다.

아들 덕에, 그리고 원래 시쓰기를 좋아하는 딸 덕분에 근 몇 년 시집을 자주 손들 들고 감동하고 있다.
아이들이 추천해주는 시집도 많고 복에 겹다.

각 가정마다 이 시집 하나씩 사서 아이들이 등교 전, 아침밥을 먹을 때 반찬위에 올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난 초딩, 중딩인 아이들이 아침밥 먹을 때 시를 많이 읽어주었다.
잔소리 대신 시를 귀에 넣어주는 시간....

밥위에 반찬 올려주듯 그렇게 귀에 넣어주었었다.
아이들이 지금도 그 이야기를 한다.

이제 한 명은 대학 기숙사에 있다가 군대를 갔고, 고딩인 딸은 기숙사에 있으니 꿈속에서나 읽어줄 수 있으려나...

그럼 몇 편의 금쪽 같은 시를 공개하겠다.

*


엄마는 곤히 잠들고
아기 혼자서
밤 기차 가는 소리 듣는다.

*



겨울 잔설 경건하여라
낙엽송들
빈 몸으로
쭈뼛
쭈뼛 서서
어떤 말에도 거짓이 없다

이런 데를 감히 내가 지나가고 있다



*
소쩍새가 온몸으로 우는 동안
별들도 온몸으로 빛나고 있다
이런 세상에 내가 버젓이 누워 잠을 청한다





어느 것 하나 그냥 읽고 넘어가게 하질 않는다.
다시 읽게 하고 또 다시 읽게 하고...

형광펜으로 줄을 치고,
또 치고
그러다 보니 다 치게 된 것이다.

삶의 지침서라고 해서 과언이 아닌 시들로 가득찼다.

내가 좋아하는 시 중 하나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



그렇다.
노를 저을 때는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이 앞만 보고 가는 것은 우리네 인생사와 같다.
죽으라고 앞만 보고 달리느라 옆에 나무가 쓰러지는지, 눈꽃이 피었는지 알바 아니다.




사진관 진열장
아이 못 낳는 아낙이
남의 아이 돌사진 눈웃음지며 들여다본다

*
옷깃 여며라
광주 이천 불구덩이 가마 속
그릇 하나 익어간다

*
여보 나 왔소
모진 겨울 다 갔소

아내 무덤이 조용히 웃는다

*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 들녘을
물끄러미 보다
한평생 일하고 나서 묻힌
할아버지의 무덤
물끄러미 보다

나는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뺐다




이제 그만 소개해야겠다.
그래야 시집이 팔릴테니까.

짧은 시로 알려진 것으로는 일본의 하이쿠가 있지만 고은님의 시는 하이쿠에서 볼 수 없는 감동과 따사로움이 글자 하나하나에 숨어앉아 있다.

아이들과 다시 함께 보면서 삶을 배우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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