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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무늬
하늘마음
[2012-05-17 03:5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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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박완서님의 작품을 아주 좋아한다.
성장과정이 나와 비슷해서일 거라는 이유도 조금 있겠지만 글의 흐름이 우선 편안하다.

그래서 술술 넘어간다는 생각을 하며 글을 읽게 된다.
그렇다고 하여 명문장이 없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박완서님이 아니면 저렇게 표현못했을 것같은 명문장이나 표현이 절절하다.
그 절절함이 꼭 두드러지게 눈에 들어오기 보다는 편안하게 읽고 나서 다시 페이지를 되돌려 볼 정도로 “gi...."하는 문장들이 많다.

작가를 비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박완서님의 글이 그렇게 물흐르듯 흘러가는 중에 물을 돌을 만났을 때 한번 여울이지듯이 가슴에 오래 박히고 물결지는 여운을 남긴다면 오정희님의 글은 뭐랄까 각져있는듯한 느낌이고, 잘 정리된 서랍을 열어보는 기분이랄까 그런 느낌이다.

이 책은 도서관에서 빌린 산문집이다.
사실 소설가의 산문을 읽으면 대부분 그 작가의 글에 대한 애착과 글쓰는 자의 고뇌와 글쓰는 습관 등을 엿볼 수 있는데 그런 점에서는 작가의 마음의 무늬와 결을 느낄 수 있어서 자주 손에 든다.

그러다 보니 소설가나 시인의 산문을 읽으면서 나를 반추해 보기도 하고, 다른 이의 삶을 담너머로 넘겨다 보는 맛이 있다.

“원고 마감일을 손꼽아본다. 도둑맞은 것처럼 날짜가 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사흘, 72시간. 밤낮을 꼬박 쉬지 않고 매달려본다면 가능할까? 일어나 공연히 방에서 거실로 부엌으로 서성인다. 허기를 느끼지도 않으면서 라면을 끓여 반쯤 먹다가 비로소 한 시간 전쯤에 이미 점심을 먹었다는 것을 기억해내곤 질겁을 해서 젓가락을 놓는다....”(본문 152쪽)

글쓰는 사람이 원고마감일에 대한 강박은 누구나 비슷할 것이다.
유명한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별반 차이는 없지 싶다.

난 책 안에서 소개되는 다른 책에 관심이 아주 많다.
거의는 사서 읽는다.

또 책 안에 다른 사람의 작품을 소개한 것도 그렇게 만났을 때는 더 감동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 책에서도 그런 만남이 있었다.

일본 시인 토미오카 다에코의 시인데 시인 신현림씨가 어느 책자에 소개한 시라고 했다.

당신이 홍차를 끓이고
나는 빵을 굽겠지요
그렇게 살아가노라면
때로는 어느 초저녁
붉게 문든 달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서야
그것으로 그뿐, 이제 이곳에는 더 오지 않을걸
우리들은 덧문을 내리고 문을 걸고
홍차를 끓이고 빵을 굽고
아무튼 당신이 나를
내가 당신을
마당에 묻어줄 날이 있을 거라고
언제나 그렇게 이야기하며
평소처럼 먹을 것을 찾으러 가게 되겠지요
당신이 아니면 내가
나를 아니면 당신을
마당에 묻어줄 때가 마침내 있게 되고
남은 한 사람이 홍차를 홀짝홀짝 마시면서
그때야 비로소 이야기는 끝나게 되겠지요
당신의 자유도
바보들이나 하는 이야기 같은 것이 되겠지요



시는 그렇게 끝이 났고, 난 이 시를 오래오래 두고 두고 읽었다.
나의 책후기 노트에 잘 적어두었다.

신기한 것은 그냥 내가 어느 작가의 시집을 다 읽었을 때 어떤 작품을 만났을 때와 다른 사람이 감동적이라며 자신의 책에 소개한 작품을 만났을 때는 첫 번에 와 닿는 느낌이 다르다.

일단 좋다는 것을 먹고 들어가서 그런가보다.

“우리가 돌아가는 곳, 집은 닻이자 덫이다.
이 세상을 환영에 불과한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이 지상에 정처를 두지 않고 절대정신을 추구하며 귀로, 퇴로를 끊어버린 벼랑 끝에 자신을 세운다.....“(본문 26쪽)

산문은 그 작가의 일상과 평소의 생각, 가치관을 엿볼 수 있어서 아주 도움이 된다.
작가를 알고 작품을 읽는 것과 그렇지 않고 읽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누군가 제게 제 소설 속에는 왜 유년과 노년만 있고 중년이 없느냐고 물었을 때 저는 ‘그 사이에는 바람이 있다’고 농담조로 대답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저는 중년 여성의 이야기를 많이 쓴 편이라는 마음속의 항변이 있었지만 중년을 다룬 소설에는 제 안의 가득한 방황, 가득한 삶의 욕망, 가득한 모성, 가득한 문학적 열망 들이 자전적인 색채로 재배한 탓에 소설은 지워지고 작가인 제 모습이 두드러진 것은 아니었던가, 또한 상대적으로 거리 두기가 수웠고 객관화시킬 수 있었던, 어린아이와 노인을 다룬 작품들에는 문학적 형상화가 이루어졌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본문 166쪽)

“저는 행복한 삶이라는 말보다 충만한 삶이라는 말을 좋아하고 그 충만함이 문학을 통해서 이루어지길 바랐습니다. 제가 가지 않은 어떠한 다른 길에 대한 선망도 동경도 없었고 능력조차도 없었다는 것은 드문 축복인 것같습니다만 생각해보면 언제나 자신이 가장 큰 적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본문 173쪽)

“작가에게는 자기만의 근원지, 고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실제의 곳이면서도 실제의 곳이 아닌, 어쩌면 지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공간인지도 모릅니다. 박경리의 평사리, 박완서의 박적골 혹은 전후의 서울, 황석영의 삼포, 이인성의 미구, 김승옥의 무진, 멀리는 마르케스의 마콘도,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포크너의 요크나파토파 등등이지요. 그곳이 잃어버린 장원이든 저주받는 안뜰이든 영원한 미궁이자 죽음의 환유이면서 문학적 태생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 문학적 공간이라면 인천의 중국인거리와 30년 가까이 살고 있는 춘천입니다......“(본문 173쪽)

정말 그렇다.
박완서님의 박적골과 서울 현저동, 내 고향 천안 병천과 서울 홍제동에서의 삶이 많이 닮아 있어서 박완서님의 작품을 그렇게 환장을 했을지도 모른다.

특히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작품을 읽을 때는 아껴 있었던 기억이 생생하고 지금도 내 책상위에는 그 책이 있어서 어느날 갑자기 아무 쪽이나 펴고 읽곤 한다.

“작가는 오직 쓰는 것으로 상처를 치유하고 자신의 세계를 확장시켜나간다.
작가에게 본다는 것, 쓴다는 것은 곧 사유이며 행위이다.
또한 모든 글쓰기는 자신의 상처와 정체성 찾기에서 시작되거나 혹은 그것을 향해 나아가며 보편성을 획득한다.
쓴다는 행위는 나란 누구이고 우리의 삶은 무엇이며 무슨 뜻이 있는 것인가 하는 물음에의 천착에 다른 아니다.....“(본문 192쪽)

한 권의 책을 읽고 나면 학창시절 도서관에서 별을 보며 운동장을 걸어나오는 그런 기분이다.
누가 들으면 엄청 공부를 했다고 생각하겠지만 뭐 도서관에만 열심히 갔다는 뜻도 있으니 너무 긍정의 힘만 발휘하여 상상하지 말기를...gg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는지를 조금이나마 깨금발로 들여다 볼 수 있었으니 다음 작품을 읽을 때는 이웃집 아줌마를 만나듯 그렇게 편한 자세로 마주 앉을 수 있으리라 믿어본다.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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